항상 기뻐할 수 있다면

2022. 6. 19. 14:45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느8:8~12)

 

1. 항상 기뻐하라

성도는 구원 받은 신분이니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그너니 항상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구원한 이들은 이 세상에서 그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실 것을 이미 작정하셨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각 개인의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반복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거룩한 성품, 품격 있는 삶을 살라고 불었다. 그 삶에 필요하다면 성공도 허락하고 실패도 준다. 우리의 끝이 이미 작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그 끝을 위해 예수가 최종 이김을 십자가에서 이루었다. 다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날까지는 세상에서 죄와 육신과 엎치락뒤치락 싸움이 있을 뿐이다. 거기서 이기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나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켭 축구가 올해 2022년 카타르에서 열린다. 한국 국가대표가 뛰는 축구 중계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볼까? 아마도 수많은 국민들이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 벌어지는 경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리라. 그런데 우리가 그 경기들을 실시간이 아니라 녹화중계로 보고 있다면 어떤가? 컨디션 난조로 전반에 2-0 지고 있다가 후반에 3골을 넣어 합 3-2로 이긴 경기,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생방송을로 본다면 조마조마하고 천국지옥을 오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결론을 알고 보면 느긋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몸짓 하나, 슈팅 하나에 일희일비 않는다. 초조할 것도 없다. 이겼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신앙의 길에서 뛰쳐나가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십자가에서 이미 약속해 주었다. 당신의 나라에 들만한 인생들로 이미 작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속된 가치관으로 내 인생 성공과 실패를, 내 삶의 업적과 성과물의 높고 낮음을 크게 웃거나 심히 슬퍼할 필요도 없다. 이미 하나님은 영원하신 작정에 따라 우리를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인도하고 있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계산하는 그 세밀함으로 인도하여 이 순간도 일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확정한 승리를 확신하면서 항상 기뻐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함은 그 역시 9회말을, 인생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께 영광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신자들은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는 목적대로 사는 것'이 표준 인생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  이 말은 예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도록 인도해 달라는 뜻이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로 가는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었음을 예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는 모든 인생들에게 '자기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세상에서 고생을 해야 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인가? 결코 그런 말이 아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단 하나님이 뜻하신 길로 사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 그것은 아버지가 내게 하라고 한 일을 내가 살아냄이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내 원치 않는 힘든 길로 작정하실 수도 있다.“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하나님의 영광을 수없이 이야기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울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주장해 온 그였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말해왔던 바울도 어느 순간에 스스로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마치 자기를 죽이려 하시는 것처럼 자기 인생이 괴로웠다'고 하였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강청기도라도 해서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작정과 통치 아래 살았던 바울은 그렇게 살라하니 그렇게 살았다. 예수도 그렇게 살았다. 이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이요 아들이다.

 

3. 우리에게 실패는 없으니

세속적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시적 결과로 성공과 실패로 나눈다. 하지만 이미 십자가로 완료된 우리의 미래적 관점에서 오늘의 내 삶을  바라보면,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인 삶으로 인도하여 영화롭게 만들어 가심을 느낀다. 이미 예수가 마귀를 이기고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허락하였다. 그러니 흙으로부터 제조되어 한 세상 살다 흙으로 돌아갈 무의미한 처지였던 우리 인생의 승리는 이미 완료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 일상적인 일, 즉 먹는 것과 마시는 것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니 우리는 이렇게 일상 삶으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한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습성들이 여전하다. 시상식에서 반드시 1등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고 세상적 성공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도 도움이 된다는 세속 가치관, 옛 사람, 이전의 나를 버리지 못한 죄성들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오늘 내 삶에 임하였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심지어는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다. 물론 가족간 타툼을 할 때가 있고 부부간 싸움을 할 때도 있음은 하늘 시민도 육신의 존재이니 약하고 범죄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약한, 그 범죄로서 죄의 권능과 위력을 깨닫고 다시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성찰이나 회개의 기회가 된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실족이다. 그것이 최후 승리로 가는 길에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그런 실족도 허락하하신다.

 

그러니 우리 믿음의 인생들에게 실패란 없다. 예수가 이미 최후승리를 완료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음은 내 소원을 들어달라고 강청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내 삶에 이루어지도록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음은 흙에 불과한 존재를, 그 흙에서 끄집어내서 하늘로 끌어올리는 구원으로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에서 성공이든 실패이든 결국은 다 흙에 속한 것들이니 썩어질 뿐이다. 그래서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이런 말을 할 때는 주 안에서라는 말을 붙였다. ‘주 안에서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무리

물고기가 물에서만의 삶을 한탄할 수는 있다. 저 넓은 대지,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 왜 나는 이 물에만 갇혀있어야 하나?’ 그래서 물고기가 그 물에서 벗어나 대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일 뿐이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을 때 진정 행복하다. 그것이 진짜 자유이다. 하나님이 살라고 한 대로, 그 하나님의 통치 아래 순종하여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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