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메리 크리스마스

2024. 12. 26. 14:35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8~14)

 

예수 출생 당시의 팔레스타인에는 추운 계절을 피하기 위한 관례가 있었다. 3월과 11월 사이에 양들을 들판에 내놓고 방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근방, 특히 베들레헴에서는 성전 제사에 쓸 양을 충당하기 위해 그 관습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있었다. 1년 내내, 더구나 추운 겨울철인 12~2월에도 양을 방목해야만 했던 직군, 즉 목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6세기 서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예수 탄생일을 1225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1. 성실히 사노라면

예수 탄생 당시는 팔레스타인의 겨울이었다. 더욱이 베들레헴 지역은 고지대였다. 해발 600m의 고산지대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양을 지키는 것은 전문 목자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목자들은 해야만 했다. 성전에 바쳐질 희생제물로서의 양들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에 고지대 들판에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 성심과 열심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고대해 왔던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최초로 듣는 축복을 얻었다. 천사를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목자들은 베들레헴 시내로 갔다. 수소문 끝에 아기 예수의 탄생 장소를 찾아 메시아를 보는 기쁨까지 누렸다. 성전 희생 제물의 양을 돌보는 일도 중요했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짜 어린양을 찾는 것, 즉 속죄양으로 세상에 온 메시아를 경배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고 마침내 그 메시아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목자들은 보고 들은 대로 충실하게 증거 하는 자들이 되었다. 아기 예수를 찾아간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들은 말들을 그대로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했다. 믿고 들은 내용을 한 치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그대로 예수의 부모들에게 전한 것이다. 천사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목소리는 어떠했으며 어떤 말투였는지 선포한 말씀과 당시 상황은 목자들 외는 아는 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충실하게 증거 하였다. 그러므로써 또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결국 누가복음에 묶여 말씀의 일부로 기록되어 2,024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선포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의 더함이나 덜함 없이 그대로 들려진 이 에피소드는 복음 전파에서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해야 함을 암시한다.

 

결국 목자들은 이 사건 이후로 그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삶으로 진전하였다. 당시의 최하위 계급에 속한 자들이었지만 자신의 삶에 불평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묵묵하게 사노라니 메시아 탄생의 계시를 받는 첫 번째 축복을 얻었다. 더구나 그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사명으로 아기 예수를 찾아감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목도하는 두 번째 축복까지 얻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과 과정들이 그들에게는 하룻밤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일에 성실히 사는 인생들에게 기회를 주신다. 한 밤중 들판의 목자들 또한 그렇게 살아왔기에 놀랍고도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체험하였다. 이 체험에 압도된 목자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이 놀라운 일을 이룬 하나님께 조용히 영광을 돌렸다.

 

2. 다시 일상으로

아기 예수를 맞이한 목자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헛헛하고 힘들다. 마치 감동에서 깨어난 듯,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을 대해야 하는 기분이랄까. 오죽하면 변화산에서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목격했던 베드로가 그 환상에서 깨어나기 싫어 '여기에다 집 짓고 살세 해 주십시오' 했겠는가?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목자들은 이제 인생의 진짜 행복이 하나님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기들이 본 것이 한없이 전파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기쁨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인생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고 그 하나님의 초점은 인간에게 맞추어져 있기에 가까이 오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의 가족인 한 아기를 택하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목자들은 찾아갔던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경험하였다. 그 이후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라는 이 메시지가 그들 인생의 희망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생명, 그 영광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이 요구하는 자기중심의 부귀가 아니었고 그런 영화는 더욱 아니었다. 아기 예수가 장차 행할 '하나님께 영광'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며 약한 자들과 어린것들을 세우며 실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고 인간의 평화를 위해 일하되 만민을 형제로 포용하신 영광이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이런 '평화'의 모습을 신약성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죄의식에 고통당하는 인생들에게 아기  예수가 평화로 왔으니 그 인생들이 사유함을 얻을 수 있다.

 

분명 인생살이가 쉽지 않다. 사느라 저질러온 악행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득이하게 거짓으로 네 이익을 도모했던 일들, 그래서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고 그 후환이 두려워 근심했던 이들이 얼마나 빈번했던가? 삶의 두려움,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믿음뿐이다. 그 믿음을 이루어주고자, 그래서 사유함을 주고자 예수가 왔다. 목자들의 인생 전환처럼, 그 믿음으로 인해 생이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것, 세상은 무심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이라는 전환적 사고는 오늘의 우리를 삶의 질고에서 헤어나게 한다. 그러나 세상사 무관심으로 사는 인생들은 생의 허무를 벗어날 길이 없다. 예수는 고뇌와 공포의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근거를 제공한다. 

 

3. 마땅한 찬양으로

사랑과 성실로 사는 인생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 하나님의 인간화 사건,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천사들의 평화 노래였다. 예수가 옴으로 이루어진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를 보면서 우리 사는 오늘 이 땅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 '만민을 위한 관심'에 동참과 연대에서 깨닫게 된다. 예수 탄생에서 '목자들의 경배'가 지상의 반응이었다면 '천사들의 찬양'은 곧 하늘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천사들이 찬양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했다. 이 찬양으로 예수 탄생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인류 구원을 위해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사랑은 찬양받아 마땅하다. 다른 일로도 영광 받아 마땅하지만 죄로 죽을 인간을 구원한 사건은 특히 그러하다.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이 선함은 이 천박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며그 평화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난 예수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처럼 허다한 천군천사들에 의해 증거 된 믿음의 외침,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이 말은 복음 중의 복음이요 진리 중의 진리이다. 이 소식을 들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던 베들레헴 들판의 양치기 목자들, 그렇게 고대하고 대망해 왔던메시아 탄생 소식이 다른 이도 아닌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진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천한 일을 하며 늘 양 떼와 같이 있느라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고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에 하찮게 취급되던 그들, 정통파 유대인들과 서기관이었던 당시 사회 엘리트들에게는 그런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최초로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게 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였다. 메시아 예수 탄생의 첫 경배자가 목자들이었다는 성경의 이 증언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일찍이 시인은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나름의 영적 감성으로 표현해 온 바 있다. 영혼의 목자장이라고,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구할 자라고 말이다. 실로 아기로 태어난 예수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그리스도가 되어 삶의 길에서 유리하는 인생들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무지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생명 길과 빛 된 삶으로의 안내자가 되었다. 2,024년 전 목자들의 이야기, 이 기쁜 소식은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이유는 온 인류가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결론

죄인에게는 구원만이 기쁜 소식이다.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이었던 예수의 탄생으로 역사는 신기원을 이루었다. 역사 연호가 이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주전(B.C)과 주후(A.D)로 구분된 것이다. 그 역사 연호가 지금 2024년을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가 이 2024번째 성탄절을 축하해 보자. 하늘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Merry Christmas!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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