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서의 말씀과 기도

2024. 4. 7. 19:14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4:3~10)

 

광야에서 금식하고 있던 예수를 사단이 다가와 시험하였다. 돈으로, 명예로, 그리고 신의 자리를 제시하며 유혹했었다. 결국 그 시험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단은 쉬지 않고 오늘도 그 똑같은 레퍼터리를 가지고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하여 거짓과 위장으로, 그리고 속임수로 흔들고 있다.

 

1. 로고스가 아닌 레마로

이런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속임수를 대항할 무기가 있다. 진리인 ‘말씀’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4) 여기 말씀이라는 단어는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이다. 같은 말씀인데 '로고스'는 무엇이고 '레마'는 또 무엇인가? 굳이 그 차이를 따지자면 로고스전체의 의미이고 ‘레마부분의 의미가 있다는 정도이다. 이를 다른 말로 '로고스'는 '진리', 그리고 '레마'는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진리는 전체로서의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령의 검은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의 말씀을 의미한다.

 

40일의 금식 광야에서 사단이 예수를 미혹할 때, 그 사단을 예수가 신8:3의 말씀으로 응수하였다. 그런 것이 레마성령의 검이라 할 수 있다. 내 삶에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와 닿는 성경 구절, 바로 말씀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사단은 예수에게 말씀으로 도발하였었다. 그런 사단에게 예수가 계속해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응수하였다. 말씀의 진의를 왜곡해서 속이고 격동시키려 했지만 말씀의 본 뜻과 진의로 대처한 예수, 결국 사단의 유혹은 실패하고 도망갔다. 예수는 그때마다 정확한 말씀으로 응수하여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순종을 이행하였다. 그러니 우리에게 마귀의 유혹이나 공격이 왔을 때 기록되었으되라는 하나님 말씀, 그것을 즉시로 인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성령의 검' 즉 '레마'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10:31~36) 예수가 교묘한 자들의 공격을 말씀으로 모두 받아 내자 악은 정체를 드러내고 그 예수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였다. 그렇게 꺾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것이 승리라고 증거한다.

 

2. 배우고 확신하여

과거 권투 챔피언 타이슨이 경기 도중에 도저히 힘으로 안 되니 상대의 귀를 물어뜯었었다. 그러니 그것으로 그는 패하였고 선수 생명까지 끝장나고 말았다. 우리는 힘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속임수로 밀고 들어오는 마귀에 대항해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의 본 뜻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꺼내어 응수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바울의 말처럼 배우고 확신하여야 하는 것이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4~17)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배우고 확신한 그 말씀 안에 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성령 받은 사람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2:12) 이렇게 성령 받은 자들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19~21)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만 갖고 있으면 오히려 마귀에게 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행19:12~16) 오늘날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연극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는 짓이 마귀가 보아도 비웃음거리요 코매디인 것이다.

 

3. 말씀에 기도를

종종 우리는 내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의심해야 한다. 매일 매일 나는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대하거나 읽을 때에도 그 말씀이 사사로이 해석되지 않도록 늘 성령의 인도와 조명을 구해야 한다. 말씀에 젖어 사는 이들에게는 신의 자녀다움이 품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말은 흉기가 될 수 있다. 나면서부터 자기를 높이려는 본능을 지닌 존재가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을 열면 자기변명, 자기자랑, 그런 것들 때문에 자신을 높이기 위해 남을 비난한다. 죄된 인간의 어떨 수 없는 속성이다. 그래서 마음에 말씀을 풍성히 담아야 한다. 내게서 말이 나올 때, 하나님이 말하는 것처럼 나오게 하라는 말이다. 우리의 인격과 사고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엡6:18) 모든 기도‘라는 함은 ’기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강조 용법이고 ‘무시로’라는 것은 ‘모든 상황’, 즉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행복할 때를 말한다. 그리고 ‘항상’은 ‘언제나’를 의미하니 우리 삶에서 ‘기도’는 일상이고 의무이다. 또한 ‘여러 성도’라는 말에서 기도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천국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그렇게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였다.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6:19~20)

 

바울은 예수를 직접 만났었고 3층천 하늘을 직접 보았던 사람이었다. 복음에 대한 논리적 설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쓰던 손수건만 가져다 얹어도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던 하나님의 대단한 종이었다.그런 바울조차도 자기가 가르친 에베소 교인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를 해 달라고부탁하였다. 우리들의 살아 갈 힘은 기도에서만 나오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되고 기쁨인 삶인지, 종종 우리는 막연할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을 살기에, 당장의 눈앞을 살기에, 이 땅의 현실만을 살기에 사실 잘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혹 모르는 길을 가게 되면 길을 아는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가듯이 신앙의 방향을 잃었거나 자신이 없으면 그것을 아는 이에게 물어보며 가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모른 채 열심만 부리다가는 사단의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한다. 항상의 기도로 바른 길을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결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거룩이다. 거룩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신앙 좋은 사람은 하나님만 붙드는 사람이다. 그것이 이 땅에서는 기도로 나타난다. 성경 지식으로 기도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지식은 기도로 귀결되어야 한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더 찾게 됨은 신앙생활이 전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의 말씀과 기도로 치열하고 진지하게 이 전쟁을 치루어가야 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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