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3. 19:47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14-30)
<소년 아이크>. 12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양팔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어린 나이에 그 괴로움이 오죽했으랴? 의기소침해하는 그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네 인생이 손이나 팔에만 있지 않다. 네 머리와 가슴도 있잖니. 그러니 네 마음이 간절히 원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아이크는 학교 육상부를 찾아갔다. 소년은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코치가 거절했다. 소년은 계속하여 부탁하고 또 부탁하여 결국 육상부에 들어갔고 그해 최장거리 육상 대회에도 도전했다. 흔들리는 팔을 몸에 묶은 채 꼴찌로 달렸지만 그는 결승점에 도착했고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받았다. 어머니의 말대로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소년은 후에 더 큰 꿈을 품고 노력하여 미국하원의원으로 국민을 섬겼다.
1. 희망의 지도로
새로운 해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 경주에 마지못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달리고 싶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니 정말 원하면 도전해야 한다. 환경이 좋아도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반면,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결과가 있다. 그 도전이 실패한다 해도 성공 못지않은 경험과 깨달음이라는 열매가 남기 때문이다. <희망이 길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희망은 없다.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희망이 없던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삶은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각자 삶의 길도 다른 누가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과거에 살다 간 모든 인류와 현재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 중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 나와 똑같은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이 없다. 우리 각자는 남이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어왔으니 인생은 기성품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온통 기성품들이다. 왜 사람들은 똑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또 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갈까?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살았던 삶, 즉 기성품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인생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인 것이다.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되었다. 누가 2022년도를 살아 보았는가? 그 길이 먼저 걸어 본 길이었던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러기에 사실상 길이 없다. 희망은 이런 길과 같다. 그러니 희망이 길을 만든다.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 만드는 것이 희망이다. 그리고 어쩌면 희망 그 자체가 길일 수도 있다. 결국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희망의 지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도가 없는 사람은 같은 자리만 맴돌거나 방향을 상실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성경은 우리에게 희망의 지도로서 최고의 희망 지도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내 삶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셨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였다.
2. 고민 없이 사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심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속량, 곧 사함을 받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기업이 되었다 함은 상속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상속은 자녀가 하는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성경을 동적이고 현실적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는 그 자체만 목표함을 경계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식물인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누리는 복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삶의 목적이 있다. 그 계획을 읽고 그 안에 있는 자기 목적을 발견하는 사람이 복된 인생이다.
2022년도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심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길 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작년의 길, 익숙한 길의 반복을 원하는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얼마나 사랑해야 하나? 모든 이들이 새해에 자기 인생의 시간표에 철저한 사람이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신자들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을 알고 싶어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각 인생들을 아끼신다고 분명하게 증거 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관심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철학자 마틴 부버는 말했다. <각 사람의 주된 임무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위대한 일은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룬 무언가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를 남긴 종과 2달란트를 남긴 종이 아무 고생 없이 이익을 남겼겠는가?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통을 겪었겠는가? 사업이라는 것이 순풍에 돛달린듯 되는 일은 없다. 많은 적자와 실패를 겪었을 것이고 땀 흘리는 수고와 잠 못 이루는 고민의 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들이 고생하는 동안에 1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은 종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생하는 꼴을 보니 안타깝긴 한데 이해할 수가 없네. 나처럼 땅에 돈을 묻어 놓으면 실패할 염려가 없는데 말이야. 수고할 필요도 없고 고민도 없으니 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된 일인가?” 사실이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안정적이었다. 그의 삶은 평안했고 고민도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내려진 평가는 책망과 멸망이었다.
3. 일신우일신의 삶으로
부여받은 달란트를 묻어 버리는 인생, 그런 공동체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기회를 낭비하였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진취적 삶은 선택이 아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니다. 안 하면 최종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부지런한 인생에게는 엄청난 복이 약속되어 있고 게으른 거짓 인생에게는 화가 약속되어 있음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올 한 해, 주신 달란트를 묻어두지 말고 갈고닦아 빛을 내보아야 하잖겠는가! 그 달란트로 장사하노라면 말썽도 생기고 고민거리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두려워 말자. 일을 하다 보면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분명,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안 하면 의견 분열도 없고 문제도 안 생긴다. 그저 조용하고 평온할 것이다.
묘지와 공동묘지를 독일어로 Friedhof 라 한다. ‘Fried’는 ‘평화’를 의미하고 ‘Hof’는 “마당, 뜰”을 의미하니 묘지는 ‘평화의 마당’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싸울 일이 없고 고민도 없으며 갈등 또한 없다. 그러나 그 평온 속에서 시체는 썩어가고 있다.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조용히 편안하게 지내는 인생은 썩어가는 시체와 같다. 2022년, 올 한 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좀 시끄럽고 어수선하더라도 장사하면서 분주하게 다니는 5달란트와 2달란트 받은 종처럼 살아보자. 경주가 끝난 후를 생각하며 경주하자. 올림픽 출전 선수가 금메달의 목표를 미리 생각을 해야 경기에 전념할 수 있다. 메달의 목표가 없다면 경주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한 해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우리 삶의 경주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끝났을 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우리가 고수해 온 것, 내 주머니에 간직되어 있는 것들이 진정 내가 누구인가를 밝혀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주의 목표는 작은 한 번씩의 발걸음을 통해서 도달된다. 사소한 매일의 삶을 통해서, 소소한 일상 일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다. 작은 붓놀림과 터치 하나하나가 모여서 살아 숨 쉬는 큰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전체적인 우리 삶이 걸작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의 경주가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간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지도를 가지고 게으름의 유혹을 이기자. 그리하여 넘치는 은혜를 체험해 보자. 그 은혜로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을 살아보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