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0. 20:32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삿1:1~4)
하나님의 전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 전쟁을 성전이니 지하드니 하며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왜 하나님의 전쟁을 굳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그것에 대한 물리적 복수, 또는 응징으로만 해석하려 할까? 혹 그런 행태들에는 내심 집단의 이익이나 개인적 공명신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기야 하나님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운동이 어느 것 하나 순수한 것이 있었던가? 다만 사사기 이야기에서 그 진위 여부를 가름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1. 유다 지파
여호수아 사후에 이스라엘에 지도자가 없었다. 사사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보이는 하나님의 모형으로 나타났던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아가 사라졌으니 이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메시아의 모형이었다. 그런데 모세는 실패하였고 여호수아도 결국 실패자로 죽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전쟁을 명했다. 그리고 시므온 지파로 따라붙게 했다. 이미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없이 치러온 이스라엘이었다.
대부분의 땅을 정복하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잔당들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이후부터는 다윗 왕의 시대까지 더 이상 약속의 땅을 확장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허락한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그 기간 동안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들만 치렀을 뿐이었다. 다만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쟁 내용에 대하여 체험학습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사기의 서론 부분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서론 이야기에 사사기 전체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 지파들 중에 왜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서론에서 등장할까? 그것은 오래전 예언에 따른 역사 이행이었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왕이 나올 지파였던 것이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49:8~10) 다른 지파의 왕이 되어 홀을 쥔 자, 치리자의 지팡이를 간직한 메시아가 올 지파, 그때까지 그의 모형으로 살게 되는 지파, 바로 그 지파가 유다였다. 그러니 사사기 1장에서의 유다 지파는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다.
2. 시므온 지파
반면 시므온 지파는 어떤 지파였던가?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의해 저주를 모면받는 교회의 모형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 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49:5~7) 자기 자존과 감정 해소를 위해 하나님의 언약 징표인 할례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죄인 모형으로 등장하는 것이 시므온 지파였다.
그래서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는, 즉 제외되는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기업을 잉여로 받아 살아나게 되었다.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수19:1) 이는 유다 자손의 기업을 잉여로 나눠 받아 살아나는 우리 모형으로 시므온이 등장한 것이다. 유다 지파가 가나안과 전쟁을 하러 나가는데 시므온 지파도 함께 나갔다. 이후에도 사사기에는 유다 지파가 전쟁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기사가 반복되어 나온다. 그런데 시므온이 그 전쟁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는 대목은 단 한 줄도 없다.
이는 저주받을 지파로서 유다 지파에 의해 잉여물을 받는 모습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라는 잉여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여호수아서 마지막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결단과 이스라엘의 언약에 이어지는 사사기의 중심 이야기이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 하오리니” (수24:15~16)
3. 가시와 올무로
이스라엘의 이 결심 선언이 왠지 익숙해 데자뷔가 느껴진다. 마치 창세기의 하나님과 아담의 언약 모습을 읽는 것 같다. 이렇듯 철저하게 언약을 했었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사사기의 내용이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땅에 남은 가나안 족속들을 다 쫓아내지는 않았다.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삿2:16~17) 이는 신명기 8장의 광야 교회에게 행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였다.
당신의 말을 지키는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그들의 광야 생활을 허락했던 하나님, 가나안 땅에서도 그들이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지 않는지 알고자 그들 대적을 남겨 두었다.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삿2:21~22) 하나님은 인생을 통해 우리의 불가능, 무력함을 낱낱이 드러내 순종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런 인생 실체를 알게 된 이스라엘들이 어떻게 했던가? 출애굽 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데리고 나왔느냐?’고 항의했던 이스라엘, 여기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으니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습이다.
그렇게 사사기 내내 이스라엘은 보잘것없는 집단, 형편없는 무리들로 드러났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2:1~4)
결론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별 볼일 없는 그들을 이끌어 갔다. 티끌로 드러난 이스라엘을 당신의 사람들로 창조해 나가는 것이 사사기 전체의 내용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은 하나님의 전쟁이었고 그것에 의한 은혜의 과정이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 이행이라는 과정으로 주어진 무상 잉여였다. 하나님의 전쟁은 그렇게 자격 없는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가는 우리 속에서 오늘도 치러지고 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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