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순종

2025. 8. 21. 12:33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 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 륙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수7:1~5)

 

기독교인다움의 정체성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성경 용어들, 신앙의 언어들이 너무 오염되고 괴이하게 사용되는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애당초 하나님의 나라는 떠들썩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세상에 은닉되어 들어온 하나님 나라, 그것이 삶에서 치르는 전쟁은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이 전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치러 나가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인생을 이런 관점에서 보는 눈,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을 보는 우리의 믿음이다.

 

1. 해골을 앞세우고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이루려 하심이니라’ (신9:5) 이런 것을 자기 부인의 전쟁이라 한다. 이런 전쟁에서는 하나님이 주체이고 하나님이 승리자이다. 믿음으로 살았던 요셉은 일평생 이 관점을 잃지 않았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창50:24~25)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진군할 때에 이스라앨은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해골을 앞장 세웠다.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50:26) 해골이 무엇을 뜻하는가? 나 자신의 죽음이요 부재이다. 그렇게 자기 부재인 해골을 앞세워 들어가는 땅이 약속의 땅이다. 이 ‘해골’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바꾸면 ‘골고다’이다. 그 골고다의 희생에 의해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약속의 땅이라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출13:18~19)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벌여나갔다. 그중에서도 유다 지피가 열심히 전쟁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예루살렘은 약속의 땅 심장이었다. 그런데 다른 지파도 아닌 유다 지파가 그 약속의 땅 심장을 공격하여 함락시킴이 의미심장하다.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삿1:8)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이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윗은 그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기도 하였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51:18) 그러니 다윗뿐이겠는가?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의 그림자들이었다. 

 

2. 인간의 문제

그러니 당연히 모든 전쟁들도 하나님이 치르는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역사가 그렇고 인생 또한 그러하니 그 과정에서 드러낸 것은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였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돌연 ‘심판하는 이는 여호와’라는 어구들이 많다. 결국 성경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들 이야기인 것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시작이 어떻게 진행되었던가? 여리고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탄탄한 도성 여리고가 어떻게 무너졌던가? 이스라엘은 손 하나 까딱 않았고 망치질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철옹성 같았던 여리고 도성이 단번에 무너졌다. 이스라엘의 순종이 있었고 하나님이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전쟁이었다.

 

세상 상식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내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는 것, 그것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의 승리 방식이었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 나라 백성들의 존재 양식이다.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단지 돌기만 하라’는 명령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것, 그러면 이긴다는 말이다. 결국 믿음의 삶은 불순종하는 ‘나’를 쳐서 순종케 하는 전쟁이다. 거기에 기생 라합의 배신이나 견고한 여리고 도성은 단지 소품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우리 인간들에게 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서는 두 번째 전쟁인 아이성에서 발생하였다. 앞의 여리고 도성에 비하면 너무도 쉽게 함락시킬 줄 알았던 아이성에서 이스라엘이 대패하였다. 그때 지도자 여호수아가 어떻게 했던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 (수7:7) 왠지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제자뷰를 보는 듯하다. 그렇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집단들이 보였던 것과 똑같은 투정을 했던 것이다. 모세나 여호수아나 이스라엘까지도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또 보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7:1)

 

3. 믿음은 순종이다

여기 이스라엘의 대패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수7:1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리고 도성에서 취한 전리품에 대하여 명한 바 있었다. 그 전리품 중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는 명령을 했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수6:18~19)

 

여기 ‘바친 물건’ 혹은 ‘바칠 물건’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은 ‘완전히 멸하기로 정해진 것, 온전히 바쳐지기로 정해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완전히 멸해져야 할 것이 조금 남겨져 아간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이 사건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였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이었다. 하나님께 바쳐져서 진멸될 것과 그 물건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같은 존재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수7:12)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것은 내 소유나 능력, 특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 앞에 바쳐진 것이다. 그러니 진멸되어도 할 말이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비워져서 철저한 자기 부인이 됨을 말한다. 이것이 안 되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인생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내 가치, 내 자존 추구가 조금이라도 숨겨짐이 아이성의 패배이다. 하나님은 그런 불순종의 싹을 자르라고 이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수7:15)

 

결론

불에 타 죽어야 할 자가 뽑히고 또 뽑혀서 하필 유다 지파에서 뽑혔다. 왜 굳이 유다 지피였나? 죽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유다지파의 예수를 계시함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수7:1)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도 매일매일 아간의 죄를 짓고 있다. 온전하지 못한 타협의 제물을 드리고 내 몫을 감추며 살고 있으니 아간들이다. 하나님이 모를까? 숨길 수 없다. 재비 뽑기를 한들 다 드러난다. 그런 우리를 뻔히 알면서도 유다 지파로 올 메시아를 준비하여 기다리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의 그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롬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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