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30. 17:38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1~3)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하나님과 싸워서라도 복 받기를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십자가를 내셨다. 하나님의 그러한 계시는 예수라는 실체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완성되었다. 인간 구원에 관한 계시는 그것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계시를 받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계시를 제대로 알아야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 계시가 내 삶에 어떻게 구현되고 우리 인생이 어떨게 그 계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 계시는 예수 이야기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로 시작한다. ‘계시’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드러냄’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하늘과 하나님의 비밀들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드러난 책이 성경이고 그 성경을 계시라 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9~10)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생각지도 못할 하늘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 그것을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성경밖에 없다. 계시인 성경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고 그가 한 일에 관해서만 기록된 책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오염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낸 스토리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복음, 또는 계시라 한다. 그러니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시종일관 그 예수만을 힌트 하고 묘사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나 또는 그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계보는 무죄한 자의 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한 ‘셋’의 이름 뜻인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자’라는 것에서, 그리고 노아의 방주 사건을 통해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읽게 한다.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 그리고 남은 자들을 감싸 안는 메시아 예수가 저주의 비를 맞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을 살리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다.
중동 땅의 한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그 아래로 줄줄이 당신의 백성들이 올라오는 아브라함의 인생 그림에서 만인을 살리는 예수를 읽게 하고 자기를 죽일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을 오르는 이삭에게서 십자가 나무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예수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얍복강가의 야곱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를 새삼 강조하여 설명한다. 그 인간 야곱은 하나님과 싸워서라도 자기 축복을 받고자 했던 불가능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극강의 이기적 인간을 쳐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십자가의 한 예시를 보여주었다. 그 강가에서의 기도로 환도 뼈를 잃은 야곱, 그것은 히브리인들에게 전인적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2. 이스라엘로 만들고자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야곱을 죽이고는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이스라엘‘ 즉 ’신과 싸워 이긴 자‘라는 이름을 준 것이다. 환도뼈가 부러졌으면 인생이 무너진 것이고 완벽하게 패배한 것인데 왜 ’이긴 자‘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죽어서 다시 살아 진짜 승리를 이룬 예수, 야곱의 이스라엘 개명은 우리에게 그렇게 선물할 승리를 보여준 것이다. 사기꾼 인생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할 길은 그렇게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했다. 그것을 예수가 이기적인 나를 품고 대신하여 이루어 줄 것임을 야곱의 얍복강 사건에서 예시하였다. 그것은 요셉의 무고한 인생과 고통을 통해서 어떤 한 백성 전체가 구원받게 될 것임으로도 보여주었다. 이후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것이고 그로 인해 구원된 하늘 백성들이 어떻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지도 예시하였다.
유월절에 어린양들이 죽고 그 피가 인방과 문설주에 발려진 집만 살아났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갔다. 그리고 그 험한 광야에서 40년 삶을 살았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인 만나와 생수를 경험하였으며 또한 심판인 불뱀 사건과 구원의 모현인 놋뱀 사건도 경험하였다. 결국 그 신앙 여정에서 옛 사람 60만 명이 모두 죽고 새 사람 60만 명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이는 새삼스럽지 않다. 사실 모세 자신이 그와 똑같은 삶을 먼저 살았었기 때문이었다. 모세 출생 당시 애굽에서는 히브리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파라오의 엄명이 있던 때였다. 그 와중에 모세는 살아나 홍해를 건너듯 나일강 물에서 건져졌다. 이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시기를 보냈고 이어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을 만난 이레 그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아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산 아래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으로 그 십계명은 내던져졌고 십계명 돌판도 깨져버렸다. 그 계명 돌판은 하나님이 준비하고 직접 쓴 하늘 거룩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깨졌다 함은 하나님의 거룩이 죄된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즉 그들의 죄를 심판함이었다. 이후 모세가 다시 받아 온 돌판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합한 계명이었고 그것이 이후 광야의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하늘 것과 땅의 것이 합쳐진 계명판,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돌판이 깨지는 사건에서 무너져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다. 이후 사사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 예수가 어떤 모습으로 와서 어떻게 이 땅의 당신 백성들을 구할지도 예시하였다. 하나님은 하나같이 결함 있는 사사들을 내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3. 영웅이 아닌 약한 자로
초기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이었던 왼손잡이 에훗, 소 모는 작대기의 삼갈, 여자 드보라, 바람둥이 삼손 등, 한결같이 약점 투성이의 인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당신의 영을 부어 큰 능력으로 적들을 섬멸케 하였다. 이는 사람들 보기에 약한 자의 모습으로 당신께서 이 땅에 올 것임을 예시함이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영웅 메시아의 출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크고 강한 하나님을 믿어왔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대 1의 전투에서 그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하지만 이세벨의 저주와 살해 시도에 두려움으로 도망 다니다가 결국 로뎀나무 아래에 머리를 처박고 죽고자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시켜 물과 떡을 실어 나르게 하여 그를 살렸다.
이후, 그릿 시내를 건너 광야 40일을 걸어서 호렙산, 즉 시내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 모든 일들과 과정들은 정확히 예수의 세상 삶과 일치한다. 예수도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였고 그 헤롯이 죽자 애굽에서 나왔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홍해 통과를 상징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10:1~2) 그리고 광야로 갔고 그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시험을 받으면서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 광야를 살게 한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이스라엘이 왜 실패했던가? 떡이 필요하다고, 복이 필요하니 그것 달라고 불평했다가 망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예수는 실패한 그들을 안고 하나님의 요구를 완성해 나갔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생수라 하여 그들의 실패를 회복하였고 오병이어 현장에서 자신을 하늘의 떡이라 했으며 놋뱀이 되어 친히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부활하여 가나안, 즉 하늘로 복귀하였다. 바로 이런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계시이고 그 계시는 선택된 이들에게만 허용된 하늘 비밀이었다. 요한계시록의 시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함은 구약 전체에 걸쳐서 예언되고 계시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공포한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은 비기나 예지서가 아니요 심판서도 아니다. 예수의 복음이 기록된 책이다. 하나님이 구약 전체를 통해서 그림자로 계시해 왔던 메시아 예수를 기록한 책이라는 말이다.
결론
그렇게 구약에서 계시해 왔던 그 삶을 그대로 살아낸 예수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1:1~2)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계시라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라는 실체를 이 땅에 보냄으로 완성된 것이다. 구원에 관한 계시는 그것이 전부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구원에 관한 계시가 성경만으로 부족하다는 말인가? ‘마지막’이라 함은 그 다음이 없다는 뜻이니 더 이상 우리에게 내려올 계시는 없다. 이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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