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0. 17:29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수7:16~21)
잘 나가던 이스라엘이 돌연 대패하였다. 그 일로 하늘을 찌를 듯하였던 이스라엘의 사기가 무너져버렸다. 이스라엘은 왜 아이성에서 패배했나? 아간이 ‘바친 물건’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7: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7:11)
앞서 하나님은 여리고에서 취한 전리품은 빠짐없이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 명한 바 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치는 것이 되어 화를 당하지 않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수6:18) 완전히 바쳐져야 할 그 ‘바친 물건’이 조금 남겨져서 아간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많은 금은 중에 하나님이 아간의 조금이 더 탐났던 것이 아니라 ‘왜 내 말 안 듣고 조금 남겼느냐’는 것이다.
1. 한 사람으로 인하여
아간 사건에서 저주받은 그리스도의 모형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신명을 도발한 아담도 볼 수 있다. 아간 사건은 그가 죄인의 대표로 저주받아 죽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모형이었다. 그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성에서 패하였다. 이는 아간이 예수를 예표하고 있음이다. 아간이 뽑히는 과정을 보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수7:16~18) 저주의 불에 타 죽어야 할 자가 뽑혔는데 하필 유다지파에서 뽑혔다. 아간 한 사람이 범죄 했는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을까?
아간 사건이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아담, 한 사람 아간이 범죄했는데 그를 대표로 한 집단을 저주받는 것, 아간이 범죄 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과 아담이 범죄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은 같은 이치이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5:19) 한 사람 아간이 범죄 해서 모든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그 아간이 죽자 이스라엘이 저주에서 풀려났다. 물론 아간은 자기 죄 때문에 죽었다. 그는 이스라엘 중에서 뽑히고 뽑혔다. 그런데 왜 그렇게 뽑히고 뽑힌 과정을 일일이 설명해 주는가? 아간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설명함이다. ‘뽑히고 뽑혀서’ 결정되자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 그런 ‘최고의 죄인’이 죽었는데 왜 이스라엘이 살아나는가?
그 사건이 예수를 모형 함이다.. 그가 유다지파라는 점, 그가 ‘뽑히고 뽑힌 자’ 대표자라는 점, 그의 죄가 온 회중의 패배와 그의 죽음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온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비슷하게, 민수기에서 예수는 ‘장대에 달린 놋뱀’으로 모형 되었다.. 예수가 뱀이나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뱀처럼 저주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간이 예수는 아니지만 예수처럼 '죄인의 대표자'로서 저주받아 죽었다는 점, 그 결과로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었다는 관점에서 '아간 사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아간이 죽어 온 회중이 살아났듯이 유다 지파인 예수는 죄인 중에 뽑혀서 만인의 죄를 대신 지고 죄인 중의 괴수가 되어 그 죄인의 괴수가 당하는 십자가 형틀에서 죽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2. 무덤 너머의 천국
아간은 돌무덤에 갇혔지만 예수는 돌무덤을 깨고 살아났다. 아간이 돌에 맞아 죽어 쌓인 돌무더기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점이 아간과 예수가 다르다. 아간은 모형이고 예표일 뿐이라 죽는 것까지만 보여주었다. 하지만 예수는 돌무덤에서 깨치고 다시 살아났다. 이것이 아이성 사건의 의미요 십자가의 구원이다. 아간 사건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 떼먹으면 벌 받는다'는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 아이성 사건을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킴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이들도 있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수7:25)
이 해석이 억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 ‘오늘날까지 있더라’는 구절이다. 이 말은 고고학적 증거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다. 앞서 모세가 출애굽 했지만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도 가나안 원주민을 다 쫓아내지 못했다. 그렇듯 아간도 예수의 모형을 보여주었지만 완벽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단지 모형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모세나 여호수아와 다른 점은 아간은 ‘범죄자의 대표로 뽑혀 죽었다’는 모형이다. 그 아간이 죽어 아골 골짜기에 묻힌 후에 이스라엘은 승리하였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영적 이스라엘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천국은 항상 무덤 너머에 있다. 아골 골짜기 너머에 소망이 존재하도록 만들었으니 이 아골 골짜기는 예수의 죽으심을 모형 한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아골 골짜기, 즉 죽음을 지나면 소망이라는 천국이 펼쳐짐을 묘사해 왔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2:15)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사65:10) 그런데 왜 하필 그 저주의 아골 골짜기가 소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이 되었는가? 이런 구절들은 ‘아간 이야기’가 ‘십자가의 모형’ 됨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다. 죽어야 살 수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로 죽어서 죄로 죽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소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이다.
3. 대신 죽음으로의 구원
그러니까 아간이 돌에 맞아 죽어 형성된 돌무덤이 위치한 아골 골짜기는 예수의 골고다 십자가 이야기의 모형이었다. 하나님은 ‘아간 이야기’를 통하여 죄의 실체와 그 죄에 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저주, 그 저주가 해결되는 방법까지 아울러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 아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던가? 아간이 죽고 아골 골짜기가 생기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완벽한 승리를 주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여호수아라는 어떤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간에게서 나타나는 죄의 실체는 곧 오늘을 사는 나의 실체이기도 하다.'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움 외투 한 벌과 은 2백 세겔과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수7:21)
아간이 전리품을 보았다. 그 보았으므로 인하여 탐용이 생겼고 그 탐욕은 이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 쓰인 동사 ‘본다’의 원어 ‘라아’는 창세기 3장의 ‘보암직도 하고’에서 쓰였던 단어와 같은 용어이다. 즉 에덴동산의선악과 사건이 여기서 다시 펼쳐졌던 것이다. 보암직도 하니 탐이나서 그것이 그의 범죄 동기가 되었다. 성경에서는 종종 이스라엘의 범죄를 가리켜 ‘아담의 범죄’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니 그 아담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였고 동시에 영적 이스라엘인 오늘의 우리들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호6:7)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이란 뜻이니 우리들, 곧 나를 말한다.
그렇게 성경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저주받을 인간과 그를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 그 아간이 누구인가? 아담이요 나이다. 내가 아골 골짜기에서 불에 타 죽었어야 한다. 그래서 내 위에 아골 골짜기 쌓여야 했다. 그렇게 죽는 과정, 그렇게 돌무덤이 쌓여가는 여정을 우리가 인생에서 당해야 했다. 탐욕의 현실 삶에서 하늘의 삶으로 내 위에 아골 골짜기, 돌무더기 쌓여가는 것, 아담이 그러했듯이 아간 안에 들어있는 나도 아간처럼 그렇게 죽어야 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서 아간처럼 저주를 받고 죽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과 그 물건을 바치는 이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삿7:12)
결론
신약에서도 물질을 드림에서 그것은 자신을 먼저 드림을 의미하였다.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바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였다. 의미는 자기 몸이고 그 실체는 헌물, 노획물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헌금의 원래 의미였다. 물질을 바치기 이전에 자신을 헌신하여 바치는 것, 그래서 아간이 ‘바친 물건’을 손 댐은 곧 그 ‘바친 사람’의 실격이었다. 그러니 시간으로 드리는 예배나 물질로 드리는 헌금은 단지 그 시간이나 그 물질을 드림이 아니었다. 먼저 나를 드림이었다.드리되 온전하게 드려야 했다. 인색함, 부득이함으로 드림은 아간의 죄를 반복함인 것이다.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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