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0. 15:00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슥4:1~10)
세상이 여전히 흉흉하다. 아름다운 소식, 가슴 뿌듯한 뉴스들 보다는 암담하고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이 더 빈번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나돌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아니 그 하나님이 경영해나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 말이다. 하기야 이 지경, 이 사태가 어제오늘 일이랴?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족들이 알아서 해보겠다고 나대던 그 옛날 고대부터 있어왔던 일들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오도되고 뒤틀린 이 세상을 하나님도 이제는 포기한 것일까? 세상을 향한 사랑에서 이제는 한발 물러선 것일까?
그 오염된 역사, 오도된 가치체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오랜 계획과 진행을 오늘 이 시대에도 진행하고 있다. 소위 성경에서 나타난 ‘성전 재건’이 그것이었다.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어나가는 일,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는 일, 다시 말해 교회를 탄생시키는 메시아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회의 탄생에 하나님의 영이 있었고 오늘날까지 그 하나님의 정신이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었고 유지될 수도 없다. 성경의 수많은 예언자들은 그 역사를 증언해 왔고 스가랴 예언자는 그 현상을 환상으로 보기까지 하였다.
1. 일곱 개의 눈
그는 일곱 영과 일곱 눈을 보았다. 그것들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을 상징한다. 계5:6에는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스가랴서에는 7개의 환상이 나오는데 그중 다섯 번째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한다. 천상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 등대에게로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계속 흘러들어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 환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스가랴가 물었지만 천사는 설명이 없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의 능력으로도 되지 않되 오직 성령으로만 된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어서 성전 재건의 스룹바벨 이야기를 하면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진짜 모습을 계시하였다. 이 환상에서 나오는 스룹바벨이 누구인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었다. 그 후 페르시아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그들을 귀향시켰다. 그때 귀향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스룹바벨이었다. 그는 유다 왕국의 정통성, 즉 왕권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다.
귀국한 그의 성전 재건에는 엄청난 방해가 있었다. 예언자 스가랴는 BC 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었는데 당시 페르시아의 다리오는 애굽의 충성심을 확인하고자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다. 겨우 얻어낸 귀환령으로 유대인들이 초조해하던 그 와중에 북이스라엘, 즉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재건을 방해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 스가랴 조차도 ‘정말 성전이 재건될 수 있을까?’를 걱정하였다. 그때 그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환상이 내려왔다. 결국 성전은 완성되었다. 성경 곳곳에는 이 같은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 그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는 것, 교회를 탄생시키는 예수의 사역을 상징한다. 예수도 그 같은 당신의 사역에 대하여 직접 언급한 바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 짓겠다’ 하였으니 예언자의 환상에 등장했던 스룹바벨은 다른 이가 아니라 메시아인 예수를 상징했음을 계시하였다.
그런데 그 일은 인간이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로 묘사하였다. 일곱 촛대는 세상을 두루 살피는 하나님의 눈인데 요한의 계시록에는 좀 다르게 묘사되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 일곱 촛대를 일곱 교회라 하였다. 그러니 그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로서 오늘의 우리 신자들을 상징한다. 하지만 스가랴서에서는 일곱 촛대가 성령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 표현도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렇게 표현될까? 예수가 교회를 탄생시키고 하늘로 갔다. 그리고 성령을 보냈다. 그 성령이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성전, 교회의 모습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2. 세상을 밝히는 교회
스가랴의 환상에서 감람나무는 끊임없이 기름을 공급받고 있었으니 그 기름은 성령이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심으로 탄생되었고 계속해서 그 성령의 조명과 인도, 충만으로 존재하고 있다.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그 교회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 그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할 것이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였는데 왜 그 일곱 촛대를 다시 성령으로 묘사했을까? 교회는 성령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유지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적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움으로 탄생되고 빛을 내는 교회라 표현한 것이다. 이미 구약 출25:31~40의 성막 이야기에서 그 관계를 예사한 바 있다.
하나님이 직접 보여준 그 나라 모형, '성막에 놓일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 함은 당시 금이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촛대는 지성소 앞 성소에 위치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이었다. 그 촛대에 불을 밝혀 365일 24시간 꺼지지 않게 함은 교회의 항존적 사역과 존재를 상징함이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교회는 그렇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으로 존재한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을 켜게 하되 그 등불을 늘 켜 두라. 아론을 시켜 회막 안 증거궤 앞에 쳐 있는 휘장 바깥에 그 등불을 켜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계속 켜 두게 하라.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라'(레24:1-4)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였다. 제사장들은 그 일을 하였다.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 불이 꺼지지 않는 환상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한 옛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만 했었다. 성막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고 그 성막 안 촛대는 그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고 빛을 발하는 무리를 상징함이니 바로 우리들 교회였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낼 수 있었다.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다. 구약을 줄줄이 꿰고 외워왔던 유대인들이었기에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기름으로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의 설명을 되새겼을 것이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하여 ‘그렇지,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된 빛을 발하는 교회이다’라는 삶의 자세를 재확인했을 것이고 그 백성으로의 본연적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단하였을 것이다.
3. 삶이 교회요 성전이라
우리가 교회이기에 내 안에 성령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된 빛이 나오는 것이다. 그 빛,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절날에 교회에 임함으로 확인되었고 확대되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고후3:17-18) 여기 ‘주의 영광을 보다’는 말은 곧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된다. 게다가 시제도 ‘현재형’이니 계속하여 하나님의 영광된 빛을 반사하는 촛대로 살아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라고 하고 바로 그런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요일1:5-7) 우리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은 빛을 발하는 삶이다.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인가? 부자가 되어 ‘내가 믿었더니 이렇듯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간증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일까? 불치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 믿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기도의 능력을 증거 하면 빛을 드러내는 삶일까?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무엇인가?
간단명료하게 말해서 예수의 삶이다. 보좌 앞 촛대가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듯이 빛으로 왔던 그가 살다 간 그 삶을 사는 것이 빛을 발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8:12) 그 예수가 어떻게 살다 갔던가?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갔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 (요14:9)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보게 해야 한다. 나의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삶에 어려움을 피할 수가 없고 불이익을 감수치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처음 믿었던 그들이 핍박과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버거웠다. 그 어려움에 자신감을 잃고 있던 그들에게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의 은혜가 임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교회가 교회 되게 함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결론
사노라면 힘든 일들이 많다. 특히 하늘 백성이라는 이유로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버거움들이 닥친다. 하지만 우리 삶은 이미 성령 아래에 있고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이 함께 한다. 그 성령은 설령 우리 삶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우리와 연합된 하나님으로서 함께 한다. 지금 우리 삶에 닥친 조건들, 흉흉한 상황들은 나의 천국행에 필요한 것들이다. 우리는 보좌 앞의 일곱 영,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다. 그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있다. 응원하고 있다. 그 성령 하나님의 그 일을 누가 막으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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