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혼란과 허무에서

2025. 9. 28. 14:14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1~5)

 

성경의 시작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구절은 학자들 간 이견이 많다.

어떤 학자는 실제 창조 과정이 아니라 6일 동안 창조에 대한 ‘서론적 설명’이라 말한다.

6일 동안에 이루어진 창조 과정 전체의 ‘제목’이 1절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1절에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했는데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 암이 깊음 위에 있더라’고 했으니

이는 창조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이었다는 증거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완전하고 아름다운 창조이어야 하는데

2절에서 그 세계가 혼돈스럽고 공허하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그러니 1절의 창조가 어떤 이유로 변동되었기에 3절부터 새로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1. 성경은 성경으로

정말 그런 것일까? 성경은 성경대로 읽어야 한다. 창1:1의 창조는 첫날 첫 창조 설명이다.

1절의 ‘천지’가 만물이 아니라 ‘하늘들과 땅’만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창조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있을 수 없다.

잘못 만들었기에 다시 엎고 새 창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첫째로 시간과 함께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였다.

여기 하늘은 월어로 ‘솨마임‘이란 복수형으로 ‘하늘들’이니

성경은 하늘을 셋으로 본다. 눈으로 보는 대기권 하늘,

그 대기권 밖의 무한히 뻗어있는 것 같은 우주 공간의 하늘,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고 장차 우리가 거할 영적 공간 개념의 하늘이다.

 

그래서 바울이 그 공간 개념의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그것을 삼층천이라 하였다.

그러니 첫날에 우주라는 공간과 지구가 만들어졌다고 믿음으로 신앙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거할 ’하나님 나라’도 이미 그때 모두 만들어졌다.

이렇게 첫날에 하늘들과 땅, 즉 지구가 만들어졌고 거기에 빛이 더해졌다.

인간 상식으로는 해와 달과 별들이 넷째 날 만들어졌는데 이 말이 이해되고 가능한가?

첫날에 달랑 지구만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지구 홀로 우주 공간에 떠 있을 수 있었을까?

지구는 많은 별들과 달과 태양과의 거리와 질량과 인력에 의해 그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정말 지구만 달랑 우주에 떠 있을 수 있을까? 믿을 뿐이다. 하나님이기에 가능하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26:7)

 

이 말은 하나님이 지구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홀로 걸어놓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창조된 지구는 처음에는 무질서의 상태였다.

그 상태를 성경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표현하였다.

그 무질서한 천지를 시간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 엿새 동안의 창조였다.

여기 ‘깊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테홈‘은 ’바다‘를 뜻하는 용어이다.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7:11)

여기 ‘깊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도 ’테홈‘이다.

첫날의 천지 창조 때 지구는 혼돈과 공허와 깊은 바다만 있었다.

 

2. 거기에 성령이

그런데 거기에 성령이 있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 ‘운행하다‘라고 번역된 원어 ’라하프‘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다‘는 뜻이다.

성령이 그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뿐인 세상을 품고 있었다.

어두운 세상 위로 질서와 빛의 세상으로 창조해 내기 위해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모습,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를 그렇게 품고 있다.

그러니 창조는 시작부터 아들과 성령이 아버지의 뜻대로 만들어 낸 삼위의 작품이었다.

그 모습은 창세전의 아버지 하나님 계획을 성자 예수와 성령이

하나님의 선택한 이들 속에서 이루어 가고 있는 오늘의 창조를 그대로 계시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런 창조 양상을 탁한 이 세상에 적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렘4:23)

선지자는 탁해져서 더럽고 극악해진 세상을 ‘혼돈과 공허와 빛이 없음’으로 표현하였다.

사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혼돈과 공허, 흑암인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 은혜로 빛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가?

그 이야기를 창조라는 가시적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이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사안들만 성경에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니 창1:1은 천지창조의 첫날에 있었던 세상과 그 속에서 구원받게 될 우리 이야기이다.

 

하지만 인간 이성에 부합하려는 해석들은 이 창조에 헛갈리는 말들을 한다.

그 중 하나가 <간격설>이다. 창1:1과 창1:2 사이에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1절에서 천사를 포함한 세상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했는데

천사장이었던 사단이 타락함으로서 그를 포함한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그 결과가 2절에서 언급되듯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지구 상태가 지속되던 중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다시 땅을 새롭게 함이 3절 이후의 창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1절의 첫 창조와 3절의 창조 사이에 수십~수백 억 년의 간격이 있었다 한다.

 

3. 구구한 설명들

그렇게 보면 지구의 나이가 왜 이렇게 많은지도 설명이 기는 한다.

그렇다면 창1:3~31까지의 창조는 첫 창조가 아니라 재창조라는 말인가?

또 하나는 <일일 간격설>이다. 이 해석은 하나님의 창조 날을 하루로 본다.

첫날의 창조만 24시간이라는 하루 이내에 창조로 보고

그다음에는 수억 년 정도 쉬다가 다음에 둘째 날 창조를 하고

또 수억 년을 쉬다가 셋째 날 창조하는 방식으로 총 46억 년에 걸쳐 창조했다는 것.

그래서 아담 이전에 이미 인류가 있었고 그들이 사단과 함께 범죄 했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여 죽였다는 해석이다.

이런 주장은 지질학의 발달로 인해 19세기 당시에 나왔던 견해들이다.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과학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 하겠다는 관점에서 나온 해석들이나 좀 억지스럽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추측이나 상상으로 기독교를 변증 하면 이런 억지가 나온다.

또 다른 하나는 <점진적 창조설>인데 ‘6일 6시대설’이라 불린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 즉 ‘욤’은 문자적 하루가 아니라 매우 긴 시간,

그러니까 지질학적 시대와 대충 일치하는 기간으로 보는 것이다.

중생대, 고생대, 주라기, 백악기 같은 지질학적 기간이 창조의 ‘하루’에 해당된다는 것,

과학적 설명으로 창조를 이해시키려는 심정은 공감되나 이 역시 다소 억지스럽다.

창조의 ‘하루’는 말 그대로 하루이다. 그 날들 사이에 간격도 있었다 볼 수도 없다.

 

엿새 만에 천지만물은 창조되었고 창조자 하나님은 그다음 단계인 7일째 안식하였다.

그래서 이 우주의 나이도 7,000년에서 길어야 12,00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4,000년 전 사람이니 거기서부터 거꾸로 족보를 따져 올라가 보면 그렇다.

그러면 수많은 화석들을 담고 있는 지층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지층과 지층이 품고 있는 화석들을 보면 마치 진화론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볍고 작고 단순한 것이 아래에 있고 크고 복잡한 것들이 위쪽으로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창조론을 입증해 주는 자료들이다.

화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죽어 땅에 묻힌 짐승들이라고 모두 화석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썩어 없어진다.

 

결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화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멀쩡한 생명체가 갑작스럽게 흙에 묻힐 때,

또 그 흙이 급속도로 압력 받아 석화가 될 때만 생긴다.

그래서 현대의 지층에는 화석을 품고 있는 고대 지층들 같은 지층이 없다.

즉 지금 발견되는 화석과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들은 지각대변동에 의해 생겨난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지각 대변동이라는 사건이 언제 있었던가?

하늘 물들이 땅으로 모두 쏟아지고 땅의 물들이 솟구쳐 올라왔던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성경은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그 사건을 노아의 대홍수이라 묘사했다.

과학자들은 대륙이 먼 옛날에 한 덩어리의 거대한 땅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나였던 대륙이 대홍수로 땅이 주저앉고 올라서서 지금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지상 위 땅들은 급속히 물아래로 잠겼고 그 위로 흙들이 덮였다.

거기서 살아남은 짐승들은 한 동안 있다가 다시 물속으로 잠기고

그 위로 흙이 덮이면서 화석과 지층으로 남게 되었다.

당연히 작고 단순한 짐승들은 먼저 죽었고 크고 힘센 짐승들은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래서 작고 단순한 짐승에서 크고 힘센 짐승들로 진화한 것 같은 화석이 생겼다.

어떤 이들은 지구의 나이를 문제 삼는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이나

천문학적 자료를 근거로 계산한 지구의 나이가 50~150억 년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하나님이 필요에 의해 지구를 50 억년짜리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미완의 과학, 지금도 계속 바뀌어 가는 과학적 견해에 하나님을 맞출 것인가?

사실 과학적 설명이 어떠하든 그런 것들은 우리 믿음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건, 또 지구의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종종 느껴지는 허무한 인생에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하나님과 어떻게 다시 연결되었는지?

유한한 세상의 내가 무한자를 믿게 된 것, 성령의 그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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