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의 뜻대로

2025. 2. 2. 16:47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단4:28~33)

 

세상에 있는 것들 중 하나님과 관련 없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일, 모든 역사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럴만하기에 일어났고 또한 진행 중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내가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또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처한 현실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일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창세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목적과 계획과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정해진 목적을 향해 유지시키고 통치하는 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 한다. 그 경륜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당신의 나라 완성과 우리의 거룩함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다.

 

1. 역사의 흥망성쇠

하나님의 시간 통치는 역사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한 국가의 생성과 멸망, 특정 제왕의 즉위와 폐위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 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단2:21) 왕들을 폐하고 세우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이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의 고백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본질적이고 항상의 능력으로 인생과 우주와 역사를 경륜해 간다. 그 진행에 우리 인간의 생각과 야망에 부합해 주지 않으며 위협에 가까운 금식 기도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1)

 

역사의 흥망성쇠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경륜은 내 일상의 사소한 것까지 포함한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10:29~31)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 값밖에 되지 않는 참새도 하나님이 돌보고 계신다. 심지어 내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빠진다. 우주와 세상과 역사뿐 아니라 내 모두 것까지 다 세고 계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고작 하나님의 조종에 의해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인가?

 

이런 의심과 불만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제1원인과 제2원인을 모르기에 야기되는 의혹들이다. 한 마디로 무지함 때문이다. 제 1원인 하나님의 경륜은 제 2원인 우리의 강요로 작용하지 않는다. 제 2원인 우리를 들어서 쓰시되 우리 각자의 특질과 성숙 정도를 활용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간다. 모든 인생들 각자의 성격과 달란트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경륜해 간다는 말이다. 내 의지를 사용하고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어떤 일을 하되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뜻을 중심으로 해 나간다. 그러니 내 의지에 반하거나 정서적 거부감이라는 강제감을 야기치 않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음의 선배들은 협력하여 이루는 선이라 표현했다.

 

2. 세상이 감당치 못해

우리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은 당신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소원을 두어 나의 행함을 이끌어낸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이 말은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 바로 뒤에 붙은 어구이다.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한 뒤에 그 일을 하나님이 행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 삶도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진행되어가고 있음을 믿는다. 실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게으르지도 않은 하나님, 졸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고 있다. 그 지킴은 상황을 내 원대로 바꾸어줌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게 해 줌이다.이런 것을 성숙이라 하고 거룩이라 하며 또 순종이라 한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드러낼 사건과 상황으로 이끌기도 한다. 바로 그때, 그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즉 그분의 지키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그 경륜을 인정하며 살았던 이들의 현실 삶이 어떠했던가?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6~38) 그럼에도 그것을 믿음으로 견뎌냈더니 얻어진 유익이 무엇이었던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이들이라는 것, 하늘 백성다움의 존재감을 드러냄이었다.

 

바로 이런 삶, 이런 삶의 현장에서 그 믿음의 주인인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그러니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서도 롬 8장의 바울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 믿음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바로 이런 고백을 듣고 싶어 한다. 왜? 당신의 사역이 우리를 향하여 경륜되고 있기에 그 일 하심에는 한 치의 실수도 없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이 티끌에 불과한 우리에게서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한다. 당신의 백성이 된 우리를 들어 무의미에서 유의미한 창조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니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하는 그 일의 완성을 방해할 수 없다.

 

3. 필요로 허락된 현실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창조자의 전능을 믿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그런 전능자를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고자 하니 이는 하나님을 자기 이성 안에 가둠이다. 역사와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결코 인간이 아니요 세인트인 우리도 아니다. 아니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런 하나님에게 자기 의견을 내놓고 왜 들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황당함을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그렇게 기도했음에도 응답해 주지 않아서 상처를 받았다느니, 인생을 걸고 기도했는데 외면받아 한이 되었다느니 등, 모두 무지이고 아집의 산물일뿐이다.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들, 특히 그분의 경륜을 신뢰하는 우리에게 한(恨)이라는 것, 분노라는 것, 불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유난히 우리 민족을 한 많은 민족이라 하여 어느 이상한 기독교 종파에서는 그 한을 가계에 흐르는 저주로 해석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 아래에서 일어남을 믿는 이들에게 한이 남아 있고 상처가 여전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 속에서 필요했기에 허락한 것들이 우리 일상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요셉이 자기 형들을 생각하며 한을 품었던가? 그것을 평생의 상처로 생각했던가?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5)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 아래에서 최상의 선을 향하여 발생한 것임을 인정하고 해석함, 그러면 원수들이 용서되고 뿐만 아니라 그런 그들 처지까지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

 

오히려 제2 원인으로 그렇게 쓰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 입장을 딱히 여겨 기도해 주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경륜을 인정하는 이들이기에 세인트들, 즉 하늘 백성들은 자기 성과나 성품을 자랑할 수도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경륜해 가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굳이 자랑하겠다면 그렇게 만들어 준 하나님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 할지니라’ (고후10:17) 이는 그렇게 살아왔던 바울의 말이다. 하나님이 해 준 것을 자랑하라는 말이다. ‘누가 너를 구별 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고전4:7) 나의 인생, 인류의 역사, 우주의 운행이 모두 그렇게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결론

그럼에도 야망을 꿈꾸고 그것의 성공 여부로 인생의 성패를 가늠시키는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 힘을 쌓으라고 인생 모든 것을 올인하라는 세속 권세의 유혹, 그것만이 만족과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는 마귀의 속삭임에 우리는 매일 흔들린다.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3~14) 하나님의 지침은 선명하다. 내 야망, 오늘의 미련을 내려놓으라 한다. 그래야 당신의 경륜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창조의 완성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이들은 오늘의 불편, 지금의 억울, 삶의 결핍 중에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신뢰로 산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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