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라는 귀신

2024. 11. 10. 17:58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마8:1~4)

 

나병환자가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제사장에게 가야 했던 율법상의 규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제사 의식을 행해야 하는 의식도 있었다. 이런 규정들과 절차들이 성경에  왜 있는 것일까? 굳이 필요했을까? 필요했고 있어야 했다. 그 규정들은 장차 올 메시아를 예표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와 규정들은 옛 몸이 죽고 새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복음,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1. 제사장으로서

예수는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자로 대표되는 인생들, 저주받은 인생들의 죄를 사하였다‘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다가와 간청하여 말하기를"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말씀하셨다. 백부장이 이에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 들일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마8:5~8) 백부장 하인의 병을 낫게 하는 이 사건에서 예수가 율법과 은혜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워하며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아들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가 믿은 대로 일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 (마8:9~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와서 천국에 앉을 것이고 율법과 혈통적 선민의식에 찌든 이스라엘의 믿음을 꾸짖은 것이다.

 

그러니 이 기적은 은혜로 얻는 구원과 행위로 구원을 이루고자 한 위선자들을 비교 하며 지적한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유사란 기적 사건이 소개되고 있는데 역시 같은 취지의 증언이었다‘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 손 대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고는 "무엇이 보이느냐?"라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쳐다보고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때에 예수께서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런 다음,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막8:22~25)

 

2. 연합을 기다리며 

침을 뱉어서 그 눈에 손을 댐은 그 죄인과 연합됨으로 우리를 치유함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그 소경이 잘 보지 못했다. 사람을 보고도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가 두 번째 안수해서 다시 치료해 주자 그제야 제대로 보게 되었다. 우리의 우매함과 더딘 영적 진보에도 포기치 않고 기다려 주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것처럼 명쾌한 진리로 설 때까지 참음으로 이끌어가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비 걸고 시험하여 하늘 표적을 요구하는 세태에 대하여 예수는 탄식하며 말했다. "어찌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막8:12) 바리새인들의 메시아 사상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강한 메시아였다..

 

그런 이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에 어울리는 힘, 세속적인 능력을 보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런 이들의 그런 표적 요구를 거절하였다. 아니 오히려 제자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메시아관을 경계시켰다. 그런 이들 생각처럼 하늘로부터 온 메시아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양식인 여원한 떡과 물, 그것은 오직 예수로만 해결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살아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 의중을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는 단지 예수가 귀신을 이겼다는 기적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도 귀신들의 소유였기에 세속적 욕망에 길들여진 죄인들을 깨우는 이야기, 예수가 그런 이들을 건져내어 하늘 백성으로 이끄는 복음 이야기이다.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와 만났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리며 큰소리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막5:1~8)

 

3. 귀신 들린 인생들

귀신들린 사람은 옷을 벗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죄에 오염된 인간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수치를 모르는 것, 이는 죄인들의 공통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기에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도소에서 수인들이 모여 앉으면 허세를 더하여 자랑하는 것이 자기 죄과들이라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사기 쳤나? 얼마나 많은 여자를 속였나? 얼마나 비싼 물건을 훔쳤나?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때렸었나? 이런 것들을 자랑삼아 말한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고 인생을 얼마나 더럽게 만드는 일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귀신 들린 사람은 무덤 가운데 산다. 무덤은 죽은 사람만 있는 곳이다. 그곳은 썩는 냄새만 있는 곳이다. 죄에 쩔은 인생들이 자기 의를 내세우며 썩어 가는 시체들 틈에서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힘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렇다 세상 속물로 사는 죄인들에게는 힘이 있다. 하기야 그런 힘이 있었기에 누구도 그를 제지히지 못했을 것이다. 돈이라는 힘, 권력이라는 힘, 지식이라는 힘들, 무덤 사이에서 사는 인생들은 그런 힘을 자기를 위한 것에 쓴다. 자신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에 온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힘임을 모른다.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더라’ 자기 교만에 빠져 다른 이에게 함부로 하는 인생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해지는 것임을 모르는 인생들에 대하여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겠는가?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고자 쟁취하고 지켜온 힘은 결국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천박한 인생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하나님 이외에 힘이라 여기는 모든 것은 마귀의 속임수이다. 인간들은 이것을 모른다. 성경은 이런 것을 다른 말로 '우상 숭배'라 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생들이 귀신 들려 자기를 우상화 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러니 우상에게 자기 존재의 안전과 행복을 맡기는 인생들은 귀신 들린 자들이요 무덤 사이에 사는 자들이다. 그렇게 귀신에 들려서 사는 자들은 세상 가치인 우상을 진짜 가치로 착각하며 산다. 예수는 그렇게 귀신 들린 자에게 와서 애급 군사들을 홍해에 몰살시켰던 것처럼 그 마귀들을 돼지 떼에 몰아넣고는 바다로 몰아넣었다애굽은 당시 세계 최강국으로서 모든 인간들이 로망해온 세상 힘으로 보이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임직한 것들을 바다에 넣어 몰살시키는 것이다.

 

결론

그런데 왜 하필 돼지였을까?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부정한 짐승이었다. 그 돼지 같은 우상들, 즉 세상의 가치로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바다에 몰살시킨 것이다. 구원은 그런 거짓 가치들로부터 벗어나 진짜 가치를 발견함이다. 이것이 성경에 기적들이 기록된 목적이다. 인간들이 가치라고, 힘이라고 여기고 있는 우상들은 실상 신기루라는 것, 그 모든 우상들을 몰살시키고 우리를 진리로 서도록 참고 기다리며 이끌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명하여 정한 산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제사장은 또 명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 피를 찍어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산 새는 들에 놓을지며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칠 일을 거할 것이요' (레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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