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하늘들

2024. 6. 9. 20:39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3~7)

 

세월이 하수상하다. 사람들이 두려움과 불안, 절망의 날들을 살고 있다. 그 세월을 살면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악은 상수가 되었으니 약은 자가 이기는 세태, 세상은 그렇게 마귀의 활동무대가 된지 오래다. 그런 세상이니 안으로 평안이 없고 밖으로도 평화가 없다. 서로들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니 개별적 싸움이 그치지 않고 집단적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욕심과 질투, 저마다 자기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눌러야 사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고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입는다. 알게 모르게 나 또한 누군가에게 두려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산다. 이 악순환, 이 지옥의 삶에서 벗어나 저 맑고 청명한 하늘로 살 수는 없는가?

 

1. 포도나무와 열매

우리가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내 안에 거하라 이 한 마디 말이 공감된다면 이미 우리 안에 그 말씀이 들어와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 대하여 성경은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였다. 내가 너를 살린다. 네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살린다.’ 이 비유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그 자체가 생명의 열매이다. 그 자체가 생명의 열매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 나라, 천국은 이 세상에 생명의 씨로 온 예수를 가리키고 그 생명의 씨를 받아 하늘들이 된 우리를 가리키며 그 둘이 하나로 연합되어 영원을 살 영적, 미래적 최종 나라를 가리킨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그 나라가 되지 못하면 그 미래적 하늘에도 들지 못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은 오늘 이 땅을 사는 우리의 삶, 나의 현실이어야 한다.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는가? 그 뜻을 이루려 내려온 이가 있었던가‘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예수는 습관처럼 자주 말해왔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 그것만 하러 왔다.’ 그리고 그 뜻이 그의 삶에서 이루어졌다. ‘테탈레스타이즉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다 이루어지니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평소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했던 말처럼 예수는 멀리 보내졌다. 대충 살자는 세상, 어영부영 살자는 세상, 좋은 게 좋다는 세상에 발붙이지 못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온 아들이 그 뜻을 이루자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 머리는 어딘가로 갔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성령으로 누군가에게 넘겨졌다. 누구에게로 갔을까? 그 머리가 교회로 보내졌다. 교회인 우리에게 넘겨진 것이다. 하늘 뜻이 땅에서 이루어졌기에 그 머리성령으로 우리에게 들어왔다. 그것을 받은 이들이 하늘들이고 그 넘겨진 성령으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니 그 상태를 거룩한 무리’, 성도라고 하고 그렇게 우리를 천국이라고 한다.

 

2. 경험되는 하늘나라

이렇게 그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였다.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 와 있는 것이다“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율법으로 무엇이 생명이고 어떤 것이 구원인지 알라고 주었는데 그 율법으로 생명과 구원보다는 제도와 제사에 목숨 걸고 있었던 이스라엘,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영원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 그 상태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었고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삶이라 하였다.

 

이 말씀의 실체였던 하나님이 인간으로 온 예수라는 그리스도, 그가 하늘이었으니 그의 현실 현현으로 이미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욕망이라는 육이 거부당하고 생명이라는 하늘 뜻으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또한 그 십자가의 삶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죽어야 사는 하늘 뜻을 알기에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 삶, 그 거룩한 무리에 합류한 삶에서 감사와 기쁨이 나온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현실의 상식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기쁜, 세상의 법칙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사, 그런 인생이기에 항상,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느끼고 살았던 삶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십자가 사건 전에 예수는 이렇게 말했었다“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바로 그 뜻이 하늘에서 출발하여 땅에서 우리 인생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오면 내가 곧 하늘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늘 영이 또 다른 하늘을 낳는 부모가 되도록 내 삶을 섬김의 삶으로 이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내 삶을 통해서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오늘 여기의 천국

천국은 관념이나 미래의 사건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늘을 만화나 영화로 상상해 왔고 소설처럼 추측하여 미래화 해왔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늘이라는 원어 우라노스이란 뜻의 호로스에서 나왔다. 이스라엘에서 산이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고지대 산성을 말한다. 하늘 높은 곳, 높은 산, 그러니 이는 모두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고지대와 관련된 개념들이다. 이 단어에서 또는 새의 날개라는 뜻의 호르니스 단어도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성전 이전의 고대 예배처였던 성막은 그 네 면 날개들을 부조라 하는데 그런 성막 모양을 멀리서 보면 마치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했을 때 역시 이런 성막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가나안 쪽은 대부분 평지였으나 예루살렘 지대는 높은 산지였다. 일종의 자연 요새였기에 훗날 로마의 티투스 장군도 이곳을 쉽게 공략하지 못했었다. 그런 역사 속의 성막, 고지대의 예루살렘, 그리고 그곳의 성전 등은 하늘을 설명하는 상징으로서의 하나님 장치들이었다. 즉 하늘은 공간적이거나 역사적, 또는 현세적 현실들로 성경에서 묘사되었지만 단순히 땅이 개념들 그 이상을 말하는 것들이었다. 땅의 것으로 하늘을 설명하는 것, 유한의 것으로 무한을 이해시키는 것, 아래의 것으로 위의 것을 계시하는 것, 그중에서도 핵심 상징물이 고지대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그러니 이라는 호로스, 즉 이 땅의 것으로 하늘 생명을 알아낸 이들이 하늘들이다. 이는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 생명이요 진리가 된 우리가 이미 하늘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가 가르쳐준 기도문 속의 하늘은 단수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하늘들이라는 우리와 예수의 기도문 속의 그 하늘은 다른 하늘인가? 그렇다. 그 하늘은 하나님의 근원지이다. 거기서 출발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명으로 이 땅에 왔다. 나는 하늘에서 온 떡이다했던 예수 말에서의 그 하늘도 단수였다. 그 하늘에서 내려온 그분의 뜻으로 이 땅을 사는 이들로 인해 땅은 하늘들로서 정복된다. 씨가 처음 땅에 떨어지면 땅이 씨를 삼킨 것같이 보이지만 그 씨가 뿌리를 내리면 그때부터 그 씨가 땅을 침범하고 그 땅을 정복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하늘들인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렇게 구현되어 가는 것이다.

 

결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3~5) 그렇다. 이것이 하늘들인 우리에게 땅이 주어진다는 유업이요 상속이다. 그런 삶을 살기에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종으로, 현실의 노예로 살지 않는다. 그것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내 삶에서, 우리 사는 이 땅에서 구현됨이다. 성경의 이러한  말씀 전개는 심오하나 명료하고 경이로우나 간명하다. 이 세상에서 그 사랑, 그 생명을 아는 우리 하늘들 삶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사5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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