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2024. 6. 23. 15:33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창25:19~23)

 

약속의 후손 이삭이 40살에 결혼을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이고 복도 받은 자이다. 그런데 무려 20년 동안 자녀가 생기지 않았다. 이삭에게 자식은 현실의 필요를 넘어서 하나님의 언약 이행을 위해 반드시 생겨야 했고 또 생길 줄 알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오랜 세월 동안 자녀를 주지 않고 기도하게 하였다. 결국 그 기도 끝에 그에게 아이가 생겼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만일 이삭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자녀가 생기지 않았을까?

 

1. 기도한 후에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를 들은 후에야 리브가가 잉태케 하였다. 모든 것을 홀로 계획하고 완성하는 분, 그러나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 애초에 인간을 자웅 한 몸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지렁이나 달팽이처럼 자가생식과 자가 잉태, 자가 출산을 시킬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 즉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둘이 함께 일하게 하고 협력하여 자녀를 낳게 함은 그런 양상이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신랑인 하나님과 신부인 우리가 합력하여 일함으로서 교회를 탄생시키고 완성시켰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이 계획하고 당신이 완성할 것임에도 우리들 마음에 소원을 두고 그 소원을 당신께 아뢰어 기도하게 하며 그 일에 전도, 선교, 봉사, 섬김으로 참여하게 하여 함께 당신의 일을 하기를 기뻐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 나누기를 기뻐한다‘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3:9) 우리를 당신 일의 파트너로 부르니 우리는 하나님을 일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레일을 깔게 하고 당신의 열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4:12~14)

 

하늘로 떠나기 전 우리를 향한 예수의 초청 내용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으니 하늘나라로 승천한 후에 당신의 행할 일을 우리에게 맡기겠다는 말이다. 그 일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하므로 그 일에 관한 한 모든 기도는 응답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라무엇이든지는 어떤 것이겠는가? 결코 내 욕심, 내 소원, 나의 문제 해결에 관한 ‘무엇이든지’가 아니다. 예수가 이 땅에서 하다가 간 그의 사역에 관한 무엇이든지이다그 나라 완성에 관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거기에 관한 모든 것을 응답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 원리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그렇게 우리어 가신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중요한 것이다.

 

2. 하나님의 침묵

이런 이치와 방식은 이미 이스라엘의 삶에 개시한 바 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겔36:35~37)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한 일을 반드시 완성한다. 그 일은 내 요구나 우리의 간청으로 바뀌지 않는다. ‘내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즉, 그 당신의 일을 하는 수단으로 우리 기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이것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이삭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할 것을 이미 약속하였다. 그러니 그 약속은 이삭이 기도하지 않았어도 어떤 경우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말 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말한 것을 후회한다? 아니, 돌이키기도 한다?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간혹 하나님이 한 말을 돌이켜 행한다는 성경의 기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진심을 표현하기 위한 신인동형론적 표현일 뿐이다. 왕하 20장에서 히스기야 왕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의 기도를 들은 후 마음을 돌이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킨 사건은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엄포였다. 애당초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종종 하나님이 내가 후회한다는 말도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강조한 표현이지 하나님이 정말 당신의 결정을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삭에게 기도하게 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삭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쓴 방법이 당신의 침묵이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20년 동안 이삭에게 침묵함으로 그의 기도를 이끌어냈다. 그러니 우리가 종종 겪는 하나님의 침묵이나 기도하고 있음에도 지속되는 암울한 상황들은 때로 우리에게 하늘 복이 임박한 전야제 같은 것일 수 있다‘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7:9~10)

 

3. 깊고 넓은 깨달음을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 원리를 이해하는 이들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서 감사를 읽을 수 있. 60세가 되어도 아이가 없었던 이삭, 약속의 후손인 그에게 그 하나님의 침묵은 참으로 힘든 세월이었었다. 하지만 그런 불안과 근심이 그의 기도를 끌어내 야곱이라는 이스라엘의 시조를 잉태케 하였고 이삭 그 자신으로는 자기 능력과 가능성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자로 성숙되었다. 요세푸스의 <유다 역사서>에는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 전까지 두 개의 제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고 그 옆의 다른 제단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지 않는 세상 것들을 얻기 위해 다른 우상 제단이었다고 한다. 마치 오늘의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내심 세상 맘몬을 섬기는 사람들 모습과 흡사하다.

 

그런데 바벨론 유수 이후에 그 다른 제단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70년간을 고생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신뢰할 분이고 그 하나님만이 전능자라는 것을 고생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말했으니 내가 이룰 것이지만 너희가 기도하여야 하리라고 함은 내가 너희를 반드시 기도하는 자들로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결코 그들의 자발적인 기도 때문에 그들을 포로에서 자유게 해주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어코 기도를 하게 하고는 그들을 회복시킨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침묵은 때로 우리에게 하늘 복을 붓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 수 있다. 삶의 어려움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근심의 시간, 어두움의 시간은 하나님의 당신 자녀 만들기 계획의 일환으로 그분의 작정 속에서 진행되는 시간들인 것이다.

 

남쪽 유다가 앗수르 병사들에게 포위당해 백성들이 인분을 먹고 있었을 때 그들의 왕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려 통곡하며 기도함으로써그의 수명이 15년 연장이 되었던 사건, 사실은 수명 연장이 아니었다. 원래 그의 수명 54세를 살다 간 것이다. 히스기야는 39세에 죽을병에서 회복되어 42세에 아들 므낫세를 낳았는데 만일 그가 죽을 병에 걸렸을 무렵인 39세에 죽었다면 그전에 하나님이 말한 언약, 유다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약속은 무요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히스기야에게 죽을병을 허락하고 그의 병을 고쳐주었는가?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메시아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었던 히스기야는 자기 한계와 보잘것없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존재케 하고 성숙시켜 완성케 함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유도한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계획을 실패없이 이루신다.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안에 있다. 그런데 그것의 현실화에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사용하여 면류관을 씌워주고자 우리로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가 나오기까지의 암울한 고통의 시간, 침묵의 시간을 거치면서 내 모난 부분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신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하나님이 이루심을 경험케 하여  현실에서의 믿음을 더욱 탄탄케 하니 깊고 넓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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