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룩한 이름

2023. 2. 3. 21:53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36:16~23)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 그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 처신에 신중하고 함부로 살지 않는다. 혹여 부모를 그것만큼 큰 불효가 없다고 여기는 기특함 때문이리라. 같은 논리로 신앙에서는 어떨까? 혹 나의 형편없는 삶이 하나님을 모욕당하게 하지는 않는가?구원받은 천국 시민으로의 삶에 강단의 선포는 영향력이 있는가? 혹 없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어느 개척교회 강단 맞은편 벽에 크고 선명하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뵙고자 하나이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면 정면으로 보이도록 쓰인 이 구절은 요한복음 12 21절의 말씀이다. 마치 거기 앉아있는 교인들 모두가 강대상에 선 설교자를 향해 던지는 부탁의 말씀 같았다.

 

1.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이 이미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당신의 거룩함이 침해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기도해야 하나?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로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인가? 유사한 경우로서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어떤 노력이 그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인가? 우리의 가진 것 중 어떤 것이 그분의 영광에 도움이 되는가? 하나님은 이미 영광스러운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그 말의 본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를테면, 여기 한 우물이 있다. 시원하게 샘솟으며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이다. 사람들이 이 우물을 위하는 최선의 길이 무엇일까? 다른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그 우물에 부으며 어때? 물을 더 보태주니 좋지?’ 그러면 그 우물이 기뻐할까? 그렇게 하면 그 우물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인가? 그 우물은 이미 물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더 이상 시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하고 더 이상 맑을 수 없을만큼 깨끗한 물이다. 그럼에도 다른 것을 가져다 부어 주면서 좋잖아?” 하는 것이 그 우물을 위하는 것일까? , 어떤 이들은 그 우물가를 금으로 치장해 주면서 그것이 우물을 진정 위하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정말 그 우물을 위하는 길은 그 우물물을 맛있게 마시고 시원하다하며 진심에서 나오는 감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우물을 알리는 것, 그것이 그 우물에게 가장 크게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한다고 기도까지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인가? 우물 이야기와 같다.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크심과 높으심과 거룩하심을 인정함이 영광 돌리는 일이다. 아울러 그분이 우리 인생에서 행하신 일을 즐기고 누리며 다른 이에게 그 진가를 자랑하는 것, 그것이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이다. 이름이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구원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에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졌음을 전제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질 수 있나? 초월자이시며 영원부터 거룩하신 분이 어떻게 그 이름이 더러워 질 수 있다는 말인가?

 
2. 인간의 하나님의 모욕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더러워 질 수는 없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그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이라는 관계를 맺으면서 세상 사람들에 의해 그 이름이 더럽힘을 당했을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더럽힘을 당하고 있다.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36:16-9)

 

하나님이 언약으로 신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계속 죄를 지었다. 분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다.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면 너희가 이곳에서 복을 받고 잘 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너희들을 이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 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 범죄하고 패역을 일삼자 하나님이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 버렸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6:20-23)

 

망국 이스라엘의 사태에 인근의 강대국 백성들이 하나님을 욕하고 우습게 여겼다. 이방 나라들이 오죽 하나님이 못났으면 자기 백성 하나 간수 못하고 이렇게 열국에 흩어서 고통을 받게 하는가?”하고 하나님을 모욕했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사를 신들의 전쟁에 의한 것이라 여기던 때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승승장구 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승리하고 계심이고 가나안 사람들이 이기면 바알이 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여기저기 흩어지자 이방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자기 백성 하나 지키지 못하는 하나님, 못난 하나님, 약골 하나님그렇게 이스라엘의 죄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더럽혀진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겠다고 하셨다.

 

3. 거룩한 이름의 회복

하나님은 어떻게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일까“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36:24-28) 열국에 흩어져 있는 자기의 백성을 취하여 내고 모아서 그들을 정결케 한 후에 그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정결케 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물로 씻어 정결케 하고 그 마음에 새 마음을 주어 새 영으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가나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더럽혀진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렇듯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은 우리의 구원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이라는 기도는 그 에스겔에게 약속하셨던 당신 백성의 구원이 이루어지기를이라는 기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도는 이미 우리에게는 응답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의 구원 얻은 증거인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그 구원이 세상에, 우리에게, 나의 삶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함은 그 응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확신하는 고백이다. 또한 우리가 여전히 옛사람을 입고 있는 처지이지만 온전한 구원이 장차 완성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인간인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진행되는 우리 삶에 그 이름이 거룩하게 되어가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구원받은 자답게 지어져 가고 있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에게 기도문을 알려 줄 때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입으로, 삶으로, 인생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분의 자녀다움을 세상에 보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삶에서 구원 얻은 자다운 삶이 나오게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눅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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