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5. 17:40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28:10~19)
교회가 흔들리는 시절을 살고 있다. 내부적 부패, 외부적 비난으로 이 시대의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교회라 하면 건물을 떠올린다. 빨간 벽돌로 세워진 건물에 붉은 네온 십자가 첨탑이 올려진 구조물, 그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성전건축>을 위한 헌금을 권하며 “하나님 거하시는 곳은 이리 허접한데 당신들 사는 곳은 그렇게 화려해서 되겠는가?” 하며 은근히 건축헌금을 강요하기도 한다. 3~40년 전만 해도 강대상 위는 거룩한 곳이기에 신발을 신고 올 수도 없었다. 모세가,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었듯이 강대상을 오를 때는 신을 벗고 올라가야만 했었다.
교회 에클레시아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명칭이 말해 주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건져내어 진 “거룩한“ 무리, 성도”들을 교회라 한다. 그 교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예배당이지 성전이 아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한다. 지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 안에 드셨다. 그러니 바로 우리들이 성전이다. 그러니 <성지순례>라는 용어도 우습다. 성지는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성지가 어디인가? 이스라엘이나 터어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지인 것이다. 바울이 교회들에게 쓴 편지에서 성도들을 교회라 하였고 그 교회들을 성전이라 하였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고전6:19) 우리들이 교회이며 성전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성전이 되었는가?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러니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 함은 우리에게서 죄가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될 수 있었음은 예수의 십자가 때문이다. 예수 또한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 한 바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심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2:19-21)
이 말은 구약의 성전이 담고 있었던 일체의 내용들이 바로 예수 자신이었다는 말이었다.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다나엘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1:48-51) 자신을 '베이트(집) 엘(하나님)', 줄여서 ‘베델’ 즉, ‘성전’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서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었다. 그때 하늘문이 열리고 사다리가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깬 야곱은 이곳이 하나님 계신 곳이라 하여 그곳 이름을 ‘베델’이라 지었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을 바로 그 베델의 주인공으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었다. 우리는 그와 연합돼 어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은 존재들이다. 이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었다. 성경은 그런 우리를 가리켜 예수가 피로 값 주고 사신 존재라 하였다.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잘 살피십시오. 또한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서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행20:28)
교회와 천국의 열쇠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16:18-19) 이보다 앞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고 물으신 바 있다. 그때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세례 요한,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나 선지자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예수는 다른 이들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성질 급한 베드로가 냉큼 던진 대답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흡족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너에게 그 고백을 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에게 “이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도 주겠다. 그 천국 열쇠를 가진 자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가톨릭의 교황권 근거로 삼는 부분이다. 가톨릭에서는 그 베드로 위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고 음부의 권세도 그를 이기지 못하며 천국의 열쇠까지 주셨다고 해석하였다. 당연히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받들었고 그 교황권을 전수받은 지금의 교황 역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교황을 교황 '성하'라 칭한다. '폐하'도 아니고 '전하'도 아닌 '성하'는 존칭 중 극존칭이다. 지금도 교황은 자신이 서명하는 모든 문서에 자신을 하나님의 종의 종이라며 사인을 한다. 하나님의 종의 종이 65억 상당의 보석이 박힌 모자를 쓰고 천국 열쇠를 죈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해석이고 주장이다. 베드로의 이름 뜻이 ‘반석’이지만 헬라어로는 페트로스, 즉 남성 주격이고 예수가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의 '반석' 페트로스는 여성명사이다. 다시 말해서 여기 반석은 '베드로가 한 고백'을 받는 말이지 인간 베드로를 말함이 아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고백 위에, 즉 베드로만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적 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천국의 열쇠가 주어진다. 이 열쇠를 지니고 부름 받아 사는 이들은 이 땅에서도 천국 백성으로 산다. 하늘 뜻이 교회인 우리들 삶에 나타난다. 그래서 교회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것이다.
풀고 매는 교회의 권세
가톨릭이 말하는 대로, 이 반석이 인간 베드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뒷부분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16:22-23) 자기 앞날을 책임져 주어야 할 스승이 죽겠다 하니 베드로는 화를 내며 항의하였다. 그랬더니 조금 전 그의 고백에 칭찬하였던 예수가 그에게 '너는 사탄이고 걸림돌이라' 하셨다. 언제든 사탄의 도구가 되어 예수에게 걸림돌이 될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긴다?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 '복이 있다'라고' 칭찬 들었고 어떤 경우에 '사단아 내 뒤로 꺼지라'는 소리를 들었던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를 섬긴다 했을 때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성경대로 헤아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고백을 했을 때 칭찬받는 반석이 되었다. 이렇듯 복음을 제대로 알고 고백하는 자들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 그런 그들에게 천국 열쇠도 맡기시는 것이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신도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 신도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18:15-18)
거듭 말하지만, 이 말씀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교황에게만 주어진 열쇠도 아니다. 교회에게 주어진 권한이다. 우리 교회가 여기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우리가 여기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는 엄청난 권세이다. 부활하신 날 예수께서 사도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해 주면 사해질 것이요 사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요20:22-23)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의 구원 사역에 동참시키셨다. 다만, 우리는 모른다.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이고 유기당한 자인지.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미 이 땅에서 하늘 삶을 사는 것이다.
결론
왜 우리 교회에게 그런 권한을 주셨을까? "빌라델비아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이 말씀하신다.“(계3:7) 우리에게 예수의 그 열쇠를 똑같이 주셨다. 거기에는 말씀을 알아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교회는 예수의 터 위에 세워졌고 그 예수는 곧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면서, 뭘 설명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교회이다’ 하면 코미디가 아닌가? 그리스도는 그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이 말씀을 대언하고 기록하여 왔다. 교회는 그 말씀 위에, 그 말씀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그 말씀이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였다.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 말씀으로 지어져 간다. 교회는 예수가 주인이시고 예수가 이끌어 가시는 곳이다. 예수께서 직접 ‘내 교회’라 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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