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탄식의 세상에서

2023. 9. 25. 18:14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창6:17~20)

 

세상이 더러워지고 있다.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두렵다. 하나님이 창조한 푸른 하늘은 오염물과 먼지로 덮여 있다. 미세 먼지로 더러워지면서 세상과 인간들의 신음소리도 더 깊어져만 간다. 눈앞에 닥친 감염병 위기에서 '우선 살고 보자'는 생각에 늘어난 일회용 제품들, 택배 물류, 포장 폐기물, 그리고 인테리어 건축폐기물들이 급증하였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는 썩는 데 400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비닐봉지는 약 400개로 세계 2위라 한다.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플라스틱은 약 100kg으로 세계 1위라 하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무심코 내가 버린 플라스틱은 흘러 흘러서 결국 하천을 따라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른다.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우리 생각보다 아주 먼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산다.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의 태평양에 한반도의 7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 바다가 만들어졌다는 보도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자연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순환의 진리를 거부한 까닭에 자연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그 자연의 탄식으로 인간의 고통이 더 커져가니 우리 사는 지구 환경이 갈수록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다.

 

1. 세 가지 탄식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세 가지 탄식을 언급하였다. 피조물의 탄식, 인간의 탄식, 그리고 성령의 탄식이 그것이다'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22절), '우리도 우리 몸을 속량 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다'(23절), '성령도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한다'(26절)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3중 탄식 소리로 하늘과 땅과 세상에 가득하다고 하였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바울은 구원을 인간만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자연 만물의 구원까지도 포함하여 보았다. 인간과 자연은 운명공동체, 구원공동체였던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좋다'고 감탄하셨다. 그랬던 세상에 인간의 범죄로 사망과 고통이 들어왔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만이 아니라 땅도, 만물 자연까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놓게 된 것이.

 

그 결과는 참담하였다. 모든 피조물이 인간의 타락 그 이후부터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 따라서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소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무슨 말이겠는가? 피조물이 받은 저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 존재가 될 때 함께 끝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탄식하는가'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 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다'(롬8:23) 우리가 '성령의 처음 열매'가 되었다는 말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왜 신음하고 있는가? 그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탄식하는가? 우리가 시련에서 이겨내려고 인내하지만 약하고 무지하다.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할 기도를 모른다. 그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탄식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안다.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기에 약하다는 우리를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도록 나를 대신하여 마땅히 구할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 그래서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구였던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엡4:22~24) 그렇다.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들이다.

 

2. 죄의 오염과 은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매년 찾아오는 역대급 폭염과 초강력 태풍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주나 미국의 산불, 얼마 전 하와이의 초대형 산불, 이는 모두 인간이 태우고 버린 온실가스로 지구가 더 뜨거워져 가는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도 더 심각한 양상으로 일어날 일들이다. 태양에서 왔다가 지구를 덥힌 복사열은 다시 우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온실가스에 갇힌 열 에너지가 지구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지구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1초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가 터지는 양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한다. 작금의 이 기후위기는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과거의 위기는 결핍에서 왔다. 둑이 없어 홍수가 났고 댐이 없어 가뭄이 왔으며 보건 위생의 결핍해서 감염병이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후위기의 원인은 결핍이 아니었다. 과잉에서 비릇되었고 성공에서 기인하였다. 인간 탐욕의 과잉과 문명의 성공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실패보다 성공을 더 조심했어야 했다. 역경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성공과 번영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1명밖에 없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 인간들의 지나친 성공과 번영으로 이 세상이, 이 지구가 깊이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탄식하고 성령도 탄식한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한다. 당신이 손수 지은 이 세상을 바라보며 무지한 파괴를 탄식하며 약하고 무지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 가서야, 강물의 마지막까지 모두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물고기조차 씨가 마른 뒤에 가서야 돈을 먹고살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은 오염되었다. 이미 이렇게까지 타락했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거두지 않는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을 비춰주었고 모든 인간에게 생명과 건강과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생물들의 삶과 물질에게도 보존의 은혜를 주었다.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세상이 지속할 수 있음은 자비로 돌보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라' (히2:10) 예수도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라' (히1:3) 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를 예고하시며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와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하셨지만'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17~20) 하여 당신이 생명을 보존하는 하나님임을 계시하셨다.

 

3. 고치시는 하나님

인간의 죄로 인한 세상이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보존하시는 하나님, 느헤미야는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렇게 노래하였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9:6)예수도 당신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고별 기도를 드릴 때 다음과 같은 심경을 드러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그리고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17:15) 우리의 보전, 온전하게 보호되고 유지됨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끝없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 무너짐의 정도가 이렇듯 참담함에도 오늘까지 우리가 생존하고 이 지구가 유지될 수 있음은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사48:9) 는 하나님의 의지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이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이 되겠는가? 그동안 우리 인간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앞만 보고 달리니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과 자연이 보내는 구조신호에 둔감했다. 함께 사는 내 이웃이 무너지고 세상이 병들어 갔음에도 나만 건강할 줄 알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달릴 수만은 없다.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며 대량으로 폐기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필요에 따라 만들고 사용한 뒤에 쉽게 버리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쉽게 만들고 쉽게 버렸다. 내가 한번 쓰고 버린 쓰레기들이 썩지 않은 채 수많은 생명을 질식시키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삶이 성령의 큰 근심을 낳았다. 도대체 언제쯤 이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인가?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회개하고 살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18:30~32)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회개해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론

이제까지의 관행생활방식, 습관적 신앙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요 말씀 말씀이다. 이 약속에 근거하여 새 각오로 오늘을 살아보자. 도우시는 성령으로 내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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