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 19:13ㆍ인문,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3)
가정의 달 5월이다. 오늘 우리 사회 공동체의 가정은 건강한가?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머니는 어머니 다우며 자녀들은 자녀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탈무드>에 ‘신이 너무 바빠 인간에게 대신 어머니를 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대신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없었을까? 무소부재한 하나님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다면 당연히 그 신의 편재성이 의심받을 것이다. 아마도 탈무드의 그 말은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다'는 말이리라.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1. 하나님은 사랑이라
이 명료한 신약의 요한일서 4장 16절 구절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가장 깊고 넓은 정의이며 성서가 증언하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구약도 하나님의 본성은 '헤세드', 즉 '한결같은 사랑'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기에 그 사랑의 눈빛과 숨결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구체이듯이 하나님의 사랑도 실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러니 어머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 준 존재이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니라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자식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사49:13-15)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모성에 비유했다. 예수도 악으로 멸망해 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울며 한탄한 바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마23:37) 어쩌면 모성은 주님을 닮았다. 아니 주님의 품성이 모성이었다.
인간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사랑한다. 배 속에서부터 은혜를 준 분이기에 일생 모친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며 산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자식의 일생을 지키는 등불이 된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이렇게 자식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기억은 오래간다. 아주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오래 남아 인생을 지배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추억은 하나의 힘이고 능력이다. 정서의 힘이고 마음의 고향이다.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인간은 그 추억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다. 특히 어머니와의 일들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힘이 되어준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것일지라도 어머니란 이름과 함께 꺼지지 않는 인생의 등불이 되어준다.
2.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던 한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었다. 청년은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위로와 간호에도 불구하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어느 날 한쪽 눈을 기증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청년은 기뻐하지 않았다.두 눈을 다 기증받아 예전과 같아지기를 고대했기 때문이다. "예야, 한쪽이라도 수술을 받자꾸나." 청년은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붕대를 풀던 날, 그만 울고 말았다. 어머니의 한쪽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이 다음에 앞 못 보는 어미를 네가 돌아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구나." 모성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니,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가 바로 어머니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을 닮았다. 그 사랑은 십자가의 희생을 닮았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8) 자기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십자가에서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시킨 예수, 우리는 그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몸을 입고 온 아들 하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랑은 관념이 아니고 구체적이듯이 하나님이 사랑 또한 추상이 아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고 구체적이듯이 하나님의 사랑 또한 그와 같다. 하나님은 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한다. 어머니는 하나님이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깨닫게 해 준 은총의 존재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러하다 함에 언뜻 아버지들은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본래 '어머니의 날'이었던 것을 '어버이의 날'로 개칭하였음은 어머니들을 위한 잔치에 아버지들을 끼워준 배려였다. 사실 모든 가정의 아내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남편들은 그 절반도 미치지 못함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기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생을 아는 자녀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들이 아버지들이다. 그만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아버지들은 지난 긴 세월 동안 넘어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꿋꿋하게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에서 가족을 등에 업고 세월의 굴곡들을 넘어 지금에 이른 아버지들은 긴 세월의 시련을 견뎌 바위에 굳건히 자리 잡은 소나무와 같다.
3. 안식일보다 우선된 부모 공경
구약 레위기 19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규례와 법도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수많은 규례와 법도 가운데 가장 으뜸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두 번째로 중요한 규례와 법도는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세 번째 규례인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보다 앞선다.
구약 잠언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잠1:1-4) 그 잠언의 첫 번째는 여호와를 경외함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1:7) 그런데 이에 이어 제시된, 두 번째로 중요한 잠언이 부모 공경이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잠1:8-9)
신약에서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3) 사실 이는 십계명을 인용한 것이다. 십계명은 구약 중 출 20장과 신 5장 두 곳에 나오는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은 바울의 말대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고 약속하였고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주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5:16) 고 약속하였다. 바울의 말대로 성경에는 부모 공경에 '장수'와 '형통'이라는 언약까지 담고 있다.
결론
어머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게 해 주신 은총의 존재이다. 그런 '사랑의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이미 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기억하고 생존해 계시다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안녕을 기도해야 하잖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었다. 이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까지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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